누구나 자식이 사랑스럽겠지만 나에게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초등학교 1학년 딸이 있다. 큰아이와 9살 터울이 나는 딸이라서 그런지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는 옛 어른들 말씀이 실감날 정도로 나는 딸아이에게 푹 빠져 있다. 큰 아이 키울 때는 귀찮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보살핌의 일들이 이제는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된다.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엄마로서의 내 자아도 성장한 느낌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딸에게 썩 좋은 엄마는 아닌 듯싶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엄마가 꼭 직장을 다녀야 하는가하고 매일 묻곤 한다. 아이는 다른 또래 친구들이 엄마 손 붙들고 학교에 등교하는 것이 그렇게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회사를 학원 끊듯이 끊어 버리라고 한다. 나 역시 애처로운 마음에 딸의 소원을 들어 주고 싶지만, 날마다 딸에게 뽀뽀하는 것으로 용서를 구하며 출근을 하곤 한다. 아마도 자녀를 키우며 일하는 엄마들은 누구나 다 가슴앓이를 할 것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제대로 된 맡길 곳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학교에 들어가면 아이의 공부를 돌볼 시간과 좋은 학원에 대한 정보를 갖지 못해 조바심을 낸다. 그래서 공부를 못해도, 뚱뚱한 비만아가 되어도 오롯이 돌보지 못하는 엄마의 탓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쥐어뜯게 된다. 그러나 이럴 때 남편은 항상 제 2선에 물러나 있는 느낌이다. 똑같이 직장생활을 해도 아이 키우는 최종 책임자는 엄마라는 것이다. 나처럼 발을 동동 구르지 않고 늘 당사자가 아닌 객관적인 입장을 가진 타인처럼 행동하는 남편이 야속해 가끔 부부싸움을 하게 된다. 젊은 여대생들에게 결혼하게 되면 출산할 것인가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자식을 키우게 되면 결국 여성이 손해를 보아야 하고, 엄마로서의 가슴앓이와 투자해야 하는 노력과 비용 등 모두다 채산성이 안 맞는다고 생각한 듯싶다. 대신에 모두가 다 커리어 우먼으로서 멋진 성공을 꿈꾼다. 그래서 우리나라 출산율은 웬만한 정부정책, 재정투자 등만으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조짐이다. 어찌 보면 가정과 직장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힘들게 사느니 한 가지에 올인 하겠다는 여대생들의 판단이 일견 현명한 듯도 싶다. 저 출산이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재앙이라 위협해도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성공을 꿈꾸는 여성들의 마음을 바꾸게 하긴 어려울 것 같다. 결국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기 위해서는 일을 하고 성공적 커리어를 쌓아나가면서도 수월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빠가 함께 참여하고, 기업과 사회가 충분히 지원해 주어야 한다. 즉 아이를 키우는데 어려움이 없는 가족 친화적 사회환경를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인 듯싶다. 아버지도 자녀 키우는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하고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진정한 관심과 사랑일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직장에 매여 밤늦게 퇴근하면서 어떻게 아이들과 얼굴 부비며 사랑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부모의 여유로운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이내 커버리게 된다. 성장하는 동안에 그때그때 주어야 할 관심과 사랑을 주기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아빠들도 아이들과 스킨십을 하며 아이와 놀아줄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전 세계의 노동시간’조사에서 ’04～’05년 통계를 기준으로 조사대상국 41개국 중 한국의 장시간 노동빈도는 49.5%로 페루(50.9%)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장시간 노동빈도는 전체 근로자중 1주에 48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의 비율이다. 결국 우리나라 근로자의 절반정도가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 다니는 아빠들에게 아이 돌보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보라고 하는 것은 아마 사치스러운 주문이 될 것 같다. 일하는 여성들이 아이 낳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부모가 함께 사랑을 쏟으며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부모들이 가정형편에 따라 좀더 탄력적으로 근무를 할 수 있고, 쓸데없는 야근을 안 할 수 있는 가족 친화적 직장문화, 사회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사회시스템을 바꾸어 나가야 하는 일이다. 야근하고 술 잘 먹는 사람이 일 잘하고, 성공할 것이라는 우리의 통념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여성들이 아이를 안 낳겠다는 마음을 바꾸게 되지 않을까? 글: 이기순 재정기획팀장 <출처: 여성가족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