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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뉴스]아이 키우느라 수고했어! ‘철학’이 불쑥 내미는 선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9-16 조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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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철학하는 엄마가 필요한 까닭…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하는 사람과,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는 사람. 기자란 늘 ‘말’에 둘러싸여 일하는 사람이다. 쉬운 얘기인데도 빙빙 어렵게만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 피곤하다. 어려운 얘기도 쉽게 술술 풀어주는 사람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생긴다.

그런데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하는 거, 그거 정말 어려운 일이다. 고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이진민, 웨일북, 2020년)을 읽고 딱 알아봤다. 아, 이 사람 고수다!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바꾸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이진민 작가는 연세대학교와 미국 브랜다이스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공부했다. 작가는 “비슷한 시기에 박사와 엄마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획득하고”, 육아라는 새로운 일상에서 건져올린 반짝이는 철학적 발견들을 글로 옮겼다. 이 책은 그렇게 태어났다.

책의 제목이나 “아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나를 두드리는 사유”라는 부제가 주는 선입견과 다르게, 이 책은 일단 웃기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노골적인(?) 경험담에, 작가 특유의 재치 있는 ‘개그감’이 더해졌다. 적재적소에서 ‘빵터지는’ 웃음들은 철학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을 녹여버린다.

작가는 플라톤과 함께 임신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출산 전야에는 사르트르와 하이데거를 떠올린다. 탄생의 순간은 아렌트의 말과 함께 기록됐고, 육아 이후 ‘부부의 세계’를 논할 때는 장자를 호출했다.

하지만 철학자 이름쯤 모르고 읽어도 괜찮다. 공부하듯 읽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이다. 솔직히 공부하며 읽으려 해도 도저히 그게 안 된다. ‘아 이제 좀 진지해졌네’ 싶으면 얼른 이런 대목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행복한 시간의 부작용이 있다면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단층의 원리를 몸소 체험한다는 것이다. 큰놈은 왼쪽에서, 작은놈은 오른쪽에서 엄마를 밀어대면 나는 자면서 S자로 찌그러지게 된다. 존재하지 않는 엄마의 S라인을 이렇게라도 잡아주려는 그 효심이 지극하다.”(152쪽)

◇ 우리는 모두 ‘철학자’를 키우고 있으니까

제목에서 예상 못한 ‘반전’ 유머가 워낙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그 얘기부터 썼지만, 오해 마시길. 이 책은 분명히 ‘철학’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철학이라는 주제의 깊이와 일상이라는 공감의 폭을 모두 지켜낸 책.

작가는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철학은 곧 질문”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좋은 철학자는 정답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란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은 모두 훌륭한 철학자다.

‘왜?’라는 질문을 한 순간도 놓지 않는 아이들. 작가는 아이들의 눈이 곧 ‘철학자의 눈’이라고 말한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아이들의 눈을 발견하는 순간은 부모들에게 ‘선물’과 같이 불쑥 다가온다.

“아이들은 친숙한 사물을 낯설게 보는 놀라운 눈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늘 거기 있던 물건이 새 물건처럼 느껴지고, 무생물들이 기지개를 켜고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런 깨달음은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일상의 곳곳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순간에 하나씩 주어지곤 했다. 마치 아이를 키우느라 피곤할 텐데 수고했다며 갑자기 하나씩 둘씩 불쑥 내미는 선물처럼.”(236쪽)

아이들이 주는 또 다른 철학적 경험은 “남이 되어보는 연습”이다. 작가는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 배우는 많은 것들 가운데 “자연스럽게 남이 되어보는 연습을 한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귀한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많은 철학자들은 남이 돼본다는 것, 낯설게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초월하는 것은 고통이 따르는 일이라고 썼다. 하지만 작가는, 부모가 아이를 위해 아이의 시선에 서는 것은 “일인칭의 세상에서 내려와 스스로 조금 낮아지는 데도, 거기에 어떤 긴장이나 고통이 크게 따르지 않는 경험”이라고 평가했다.

“유럽은 담배에 관대한 문화라, 주차장 엘리베이터 안에 끄지 않은 담배를 들고 타는 사람이 있어 나는 뭉크의 절규 같은 얼굴로 기함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 역시 그동안 프레온 가스를 아기 곰 얼굴에 훅 부어댄 타인은 아니었을까. 엄마 북극곰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아기 곰일 텐데.”(132쪽)

작가는 “분명히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 조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엄마가 됨으로써 얻는 귀한 교훈”이라고 썼다. 일인칭의 세상에서 내려와 낮은 곳을 볼 때 더 단단하게 느낄 수 있는 “세상과의 연결고리”. 작가는 이 모두가 “참 고맙고 신기한 존재”인 아이가 주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 '질문'과 '연결'로 함께 자라는 부모와 아이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는 새로운 시선은 물론 새로운 ‘속도’도 발견한다. 어른 걸음으로 5분으로 갈 수 있는 거리를 30분씩 걸려서 가는 아이들. 목표 앞에서 과정은 너무 쉽게 무시되는 것이 어른들의 세상이지만, 아이들의 세상에는 모든 과정 또한 목표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면 시계 또한 다르게 흘러간다.

작가는 “볼 것이 많고 즐길 것이 많은 길이지만 내가 아이들처럼 즐기지 못할 따름”이라는 생각에 “시계보다는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얼굴을 보기로” 마음먹는다. 아이들에게서 느리게 걷기를 배우는 시간. “느리게 걷기의 달인들이 곁에 산다는 것은 속도감에 지친 어른들에게는 큰 행운”이라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작가는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일상은 물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 곳곳을 철학의 눈으로 질문한다. 경쟁과 혐오가 가득한 사회. 내 아이만은 그 경쟁의 맨 꼭대기에 서서 모두를 발밑에 두고 살기를 바라는 사회. 작가는 “그런 것은 바로 자기 자신과 아이를 파괴하는 악순환이 될 뿐”이라는 루소의 말을 전한다.

“약한 존재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난다”는 작가의 생각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약자에 대한 입장이 그 사회의 ‘격’을 보여준다는 말. 하지만 ‘측은지심’의 빈자리를 혐오와 분노로 가득 채운 사회에서, 결국 나 자신도 “돌고 도는 분노의 희생양이 된다”고 작가는 경고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혐오의 가지와 분노의 잎이 너무나 무성하게 자라나 측은지심의 새싹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사회로 보인다. 혐오와 분노로 가득 찬 사회에서 결국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약자들이다. 가장 연약한 어린아이들에게 세상이 잔인해지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닐까.”(193쪽)

아이를 키우는 동안 혼자 집 안에서 도태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엄마들이 있다.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자기관리’라는 이름으로 다이어트나 어학공부를 하면서 자존감을 되찾으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런 엄마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기관리가 아니라 ‘자아(自我)관리’다. 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힘. 자신과 세상을 향해 끝없이 질문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필요하다. 작가가 “똑똑한 엄마, 유능한 엄마보다 세상에는 우선 철학하는 엄마들이 등장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도 바로 그것 아닐까.

이 책은 “오늘도 함께 부지런히 크자꾸나”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누구를 희생해 누구를 키우는 관계가 아닌, 서로 돌보고 함께 자라는 사이, 참 좋다. “아이는 좋은 생각과 질문을 낳아 엄마에게 던지고, 엄마는 또 그걸 받아 고민”하며 함께 크는 것. 이것이 철학이 주는 선물이라면 기꺼이 받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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