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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뉴스]독박 육아는 남자가 해도 극한 직업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9-02 조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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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박강아름 결혼하다’(2019)

배우자를 따라 외국으로 이주하면서 경력이 단절됐다. 현지어를 하지 못해 당장 경력을 이어갈 방법이 전무하다. 경제적으로 쪼들린다. 이것만으로도 악조건인데, 24시간 돌봐야 하는 신생아가 있다. 으악!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우자는 학업으로 바쁘다. 외국이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아기를 맡길 만한 육아 조력자가 없다. 배우자 말고 만나서 속풀이할 친구도, 지인도 없다. 육아에도 난도가 있다면, 가장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고 할 만하다. ‘고립되어 구원 받을 데가 없음’ 고립무원의 결정체인 상황이다.

배우자를 따라 프랑스에 갔다가 빼도박도 못하는 독박육아 상황에 처하게 된 성만. ⓒ영화사진진

이 극한 육아 상황에 특이점이 있다면, 전담 양육자가 아빠라는 것. ‘박강아름 결혼하다’(2019)의 주인공이자 감독 박강아름의 배우자 성만이 바로 그다. 아름과 성만은 진보정당 활동을 하다가 만났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아름이 주도했다. 영화감독 아름은 학자금 대출을 갚고 유학 경비를 모으자마자 오랜 꿈이었던 프랑스 유학을 떠나려고 한다. 성만은 한국에서 요리사 보조 일을 하면서 혼자 소설을 썼기에 프랑스에서 요리 공부를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름의 유학길에 따라나선다.

좁디좁은 프랑스 집에서 아름이 아기를 갖고 싶다고 말할 때, 나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타고 이 부부에게 달려가 이들을 뜯어말리고 싶었다. 아기가 나오면 둘 중 한 명은 학업을 포기해야 될 텐데요, 제발 미래에서 온 이 중년 유자녀 여성 관객의 말을 들어주세요! 나의 내적 비명이 이 부부에게 닿을 리 만무하고, 부부는 사랑스러운 딸 보리를 얻는다. 성만은 요리 공부는커녕 어학원 수업도 중단하게 된다. 자기소개를 해 달라는 아름의 말에 성만은 대답한다. “저요? 이 집안의 식모죠. 하인이에요.”

부부는 프랑스 유학 중에 임신 성공, 딸 보리와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된다. ⓒ영화사진진

성만은 영화 내내 우울해 보인다. 잘 웃지 않고 늘 의기소침하다. 남편이 주부 우울증 비슷한 것에 걸렸다고 판단한 아름은 성만을 위해 집에서 손님 한 팀만 받아서 요리를 대접하는 ‘외길 식당’을 제안한다. 성만이 외부인도 만나고, 자신의 요리 실력을 발휘할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외길 식당’의 목적이었지만, 이 식당이 성만의 우울증 해소에 결정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살림은 빠듯하고, 성만은 좋은 요리 재료를 쓰려고 하니 ‘외길 식당’은 늘 적자이고, 다양한 유학생과 프랑스 현지인들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삶의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했지만 아무리 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뾰족한 수가 안 보인다. 우리 가족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다소 원론적인 결론만을 얻고 ‘외길 식당’은 영업을 중지한다.

'외길 식당'을 찾아온 손님과 이야기하는 아름과 성만, 보리. ⓒ영화사진진

이들 가족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아. 남자가 해도 독박육아는 힘든 것이로군! 그렇다면 독박 육아는 왜 힘들까. 집에서 가사를 전담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왜 그 당사자에게 ‘식모’나 ‘하인’의 일로 느껴질까. (무조건적인 사랑이 샘솟는 작은 생명체를 가족으로 맞는 일은 인생의 근사한 사건이다. 육아의 기쁨도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이기에, 여기선 길게 말하지 않겠다.)

"저는 이 집안의 하인이에요."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성만. ⓒ영화사진진

‘하인’은 우선, 자기 자신의 욕구가 아니라 주인의 명령, 육아로 치면 아기 상전님의 요구에 전적으로 맞춰야 하는 직업이다.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일해서 더 그럴싸한 성취를 이루라고 평생 교육 받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육아가 시작되면, 하루아침에 갑자기 인생의 판도가 뒤집힌다. 성취를 위한 모든 노력을 잠시 중지해야 한다. 성공이란 가치가 주변부로 밀린다. 나는 아기들이 흘린 음식으로 난장판이 된 바닥을 쪼그리고 앉아서 닦을 때, 하인이 됐다고 느낀다. 돌봄 노동의 속살은, 대체로 구질구질하다.

나는 쌍둥이들이 두 돌이 되어서야 문득 깨달았다. 육아란 똥거름이 되는 일이다. 아기들이 부모라는 토양에서 마음껏 영양분을 흡수해서 자신의 가지를 더 멀리 뻗어나갈 수 있도록 비료가 되어주는 일. 갑자기 비료의 삶을 살아야 하니 자아분열은 필수였다. 뭐야, 피터지게 일하라며, 연봉 올리고, 높은 자리로 올라가라며. 여긴 연봉도 없고 승진도 없어!

그렇다면 구질구질하니까, 돌봄 노동은 ‘하인’의 일이라고 마음 놓고 비하해도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세상에 생명을 내놓고, 그 생명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분명 의미가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 좋은 일을 하면서 전담 양육자 성만은 왜 그리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을까.

육아의 기쁨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돌봄 노동은 왜 이리 뼈 빠지게 힘이 들까. ⓒ영화사진진

우리 사회는 모성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는 숭고하다고 치켜세워 주는데, 돌봄 ‘노동’은 실질적인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폄하하기까지 한다. 전업주부들을 향한 비난, ‘집에서 논다’는 말이 그 예이다.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기 위해 경력을 포기하면, 경제력과 사회적 자아를 동시에 잃어버린다. ‘맘충’이라는 어휘가 대표하듯이, 사회는 독박육아를 하게 된 양육자들을 결코 너그럽게 품어주지 않는다.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경제적 보상을 받을 길도 막혀 있고 사회적 인정은 손에 잡히질 않으니 전담 양육자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경제권을 쥐고 있는 아름이 성만에게 '왜 그냥 토마토를 안 사고 비싼 체리 토마토를 샀냐'고 타박하자 성만은 가출을 한다. ⓒ영화사진진

그러니 성만의 저 어두운 얼굴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얼굴은 오랜 세월 동안 독박 돌봄을 도맡아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얼굴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당연히 해온 일’이라는 베일 한 겹이 벗겨지고, 성 역할이 뒤집힌 광경을 보고 나서야, 독박 육아의 민낯을 알게 됐다. 이거 역시 힘든 일 맞구나. 여성들이 우울해한 건 당연한 일이었어.

영화제에 나간 아름에게 한 외국인 여성 패널이 농담처럼 말한다. “당신은 응석받이예요. 나도 당신처럼 모든 걸 다 해주는 남편이 있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남성들이 그 ‘모든 걸 다 해주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사회생활을 했는걸요. 게다가 많은 여성 전업주부들은 ‘남편이 돈 잘 버니 집에서 애만 봐도 되는 편한 팔자’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잖아요.

부부는 마지막 장면에서 비바람 속에서 유아차를 낑낑대며 함께 옮기고, 싸움인지 대화인지 모를 이야기를 오래 나눈다. 부부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영화사진진​

한 사람이 독박 육아, 다른 한 사람이 독박 부양하는 모델은 현재 사회 지형에서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 버겁다. 남자와 여자가 바뀌어도 이 모델은 한쪽의 크나큰 희생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음을 이 영화가 증명하고 있다. 나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내내 궁금했다. 전담 양육자가 된 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성만의 꿈은 어떻게 됐을까. 그는 소설 쓸 시간을 낼 수 있었을까. 참고로 나는 오밤중에 자다 깨서 절대적으로 엄마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딸을 안고 이 원고를 완성했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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