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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뉴스]쿨한 엄마 되기는 글렀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2-31 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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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레이디 버드’(2017)

지난 가을, 내 생일날의 일이다. 딸이 저녁 6시부터 10시에 잠들기까지, 한 시간에 한두 번씩 뒤집어졌다. 아들이 가지고 놀고 있는 장난감을 자기도 가지고 놀고 싶다. 옷소매가 올라가 있다. 내려 달라. (멀쩡하게 5분 전에 로션을 발라놓고) 갑자기 로션을 바르기 싫다고 대성통곡을 한다. 겨우 침대에 눕혔는데, 이불이 똑바로 놓여 있지 않다고 “똑바로!! 똑바로!!” 외친다. 물론 이불을 똑바로 놓아도 울음은 그치지 않는다.

이날, 마음속으로는 백 번도 더 고함을 질렀다. “야!!! 그만해!!! 도대체 뭘 어쩌라고!!!”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 인생에, 내가 낳은 이 아기들만큼 나한테 막하는 사람이 있었나? 없었다. 이렇게나 날마다, 변함없이, 꾸준히, 내 말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었나? 없었다. 그리고 내린 엉뚱한 결론. 자식이니까 키우는 거지, 친구나 지인이 나한테 이렇게 막무가내로 했으면 바로 손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기들은 나를 무시하는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날 사랑해준다. 며칠 전, 빨리 준비를 마치고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켜야 내가 재택근무를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가득차서 아기들 아침을 먹이고 있을 때였다. 딸이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말했다. “엄마. 나 어린이집 가기 싫어. (왜?) 어린이집 가면 엄마 보고 싶어서. 엄마는 띵동, 하면 와.” 딸은 처음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울고 들어간 적 없어서 내심 흠칫 놀랐다. 나는 솔직히 근무를 시작하면 일하느라 바빠서 아기들 생각을 안 한다. 아기들 하원 시간 전에 일이 안 끝날까 봐 늘 동동거리는 신세라서 하원 시간이 기다려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딸은 기다리는구나. 내가 하원 시키러 가서 교실 초인종 누르는 소리 ‘띵동’을.

내가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 아기들은 넘치는 사랑으로 날 몸 둘 바 모르게 만든다. 그런데 아기들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씩씩대며 화를 삭인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관계는 냉탕과 온탕, 북극과 적도를 오간다. 우아하고 따뜻한 온대 기후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기는 글렀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모녀 관계의 역동이 국적이 달라져도 비슷하다는 걸 알려줬다. 주인공 ‘레이디 버드’와 엄마는 서로를 열렬히 사랑한다. 그리고 박 터지게 싸운다.

영화 '레이디 버드'의 시나리오 가제는 '엄마와 나'였다고 한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아버지의 실직 기간이 길어지자 어머니가 2교대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홀로 가장 노릇을 한다. ‘레이디 버드’의 오빠가 다니던 공립학교에서 칼부림 사건이 벌어지자, 이들은 딸의 안전을 위해 그를 사립 가톨릭 고등학교에 보낸다. 살림이 빠듯해서 사립학교 학비 대기가 힘들지만, 엄마는 몸이 부서져라 일한다. 그렇지만 딸은 넉넉하지 못한 집을 늘 부끄러워한다. 그런 딸에게 엄마가 속내를 토해낸다. 넌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어. 널 위해 우린 모든 걸 하고 있는데 너한텐 항상 우리가 부족하지. 너 키우는 데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 줄 알아?

"너 키우는 데 얼마나 드는지 알아?"라고, 분노를 한껏 담아 다그치는 엄마를 바라보는 딸.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엄마가 이 정도 하면, 딸이 수그러들 줄 알았다. 그런데 ‘레이디 버드’가 종이와 펜을 들고 말한다. “나 키우는 데 얼마나 드는데? 알려줘. 그럼 커서 그 빚 다 갚고 엄마아빠랑 인연 싹 끊어버릴 테니까!” 세상에, 저게 자식이냐, 원수냐! 입이 딱 벌어졌다. 그리고 얼마 전에 했던 생각을 똑같이 했다. 친구 사이에서 저렇게 심한 말하면 손절이지. 네 엄마니까 봐 주는 거다.

그렇다고 ‘레이디 버드’가 마냥 망나니 딸인 건 아니다. 고등학생이지만, 아직도 내면에서는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한다. 딸이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고 엄마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레이디 버드’는 말한다. “그냥 좀 예쁘다고 해 주면 안 돼? 난 엄마가 날 좋아해주면 좋겠어.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엄마 나 정말 좋아해?” “난 네가 언제나 최고의 모습이기를 바라.” “만약에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아. 아이들은 자신이 초라하고 부족한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구나. 그러니까 엄마의 눈에라도 최고로 보이기를 바라는구나. 세상에, 이렇게 애절하고 진한 사랑이라니.

"이게 내 최선의 모습이면?" 엄마는 늘 딸에게 기대를 걸고, 딸은 기대보다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레이디 버드’는 늘 고향 새크라멘토가 밋밋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면서 동부로 떠나기를 갈망한다. 엄마는 학비가 없으니 주립대학교에 가라고 하지만, 그는 비밀리에 동부의 대학교에 지원해서 합격증을 받아낸다. 이름대로 새처럼 훨훨 날아 부모의 둥지를 떠나는 것이다. 그는 뉴욕에서 좌충우돌하며 그제서야 자신이 떠나온 둥지의 소중함을 돌아본다. 부모가 준 이름 ‘크리스틴’을 버리고 ‘레이디 버드’라는 미들네임을 지어서 그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 달라고 주장했던 그는 부모님 집에 이런 메시지를 남긴다.

이토록 비굴하고 질척이는 사랑이라니.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엄마 아빠, 저예요. 크리스틴. 두 분이 좋은 이름을 지어주신 것 같아요. 엄마한테 이 말하고 싶었어요. 사랑해. 고마워요.”

부모와 연을 끊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딸은 자신에게 좋은 이름을 줘서 고맙다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자신을 속이고 동부의 대학교에 진학한 딸에게 화가 난 엄마는 고향을 떠나는 딸을 배웅도 하지 않으려다가 뒤늦게 공항으로 숨차게 달려와 눈물 짓는다. 서로에게 비굴하기가 이보다 더할 수 있나.

그런데 나는 이들 모녀의 ‘누가 누가 더 비굴한가’ 경쟁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떠나고 싶은데 돌아가고 싶고, 멀리 있고 싶은데 가까이 머물고 싶은 모순적 사랑. 에잇. 나는 온대 기후처럼 온화한 엄마도 못 되겠지만, 냉대 기후처럼 쿨한 엄마도 될 수 없을 것 같다. 40 평생 누구와도 이렇게 끈적이고 질척이는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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